똑똑
"들어오세요."
끼익
"쿠로사와 양,상태는 좀 어때요?"
"전혀 달라진 게 없어요."
"정말.그런 소리 하면 의사는 기운 빠진다구요."
"하지만 사실인걸요."
"네네,그럼 쉬고 있어요."
"오하라 선생님…."
"어머,루비 양 왔네요.환자분은 안에 계시니 들어가세요."
"언니가 아니라 선생님께 볼일이…."
"그래서 볼일이란 게 뭐죠?"
"선생님,저희 언니는 앞으로 얼마나 남은 거죠?"
"그게 무슨 말인지…."
"이미 알고 있어요.언니가 얼마 안 남은 건."
"……"
"치료방법은 아예 없는 건가요?"
"아예 없는 건 아니야…."
"그렇다면 당장…."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예?"
"일단 국내엔 관련 장비가 없어서 해외로 가야만 해.게다가…."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어요!"
"수술한다 해도 성공확률은 30%.그래서 환자 자신의 의사가 중요해."
"하지만 언니는…."
"그래…다이아는 이미 살 의지가…."
그렇다.내 담당 환자 쿠로사와 다이아는 이미 삶에 미련이 없다.
"나도 다이아를 저대로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아.하지만 본인이 저래서는…."
"그래도…포기 안 해요…언니는 반드시 제가…."
"훌륭한 여동생이네."
"오하라 선생님,감사합니다.그럼 이만."
그렇게 멀어지는 루비를 보며 나도 남아있는 커피를 비우고 다시 병실로 향한다.
"어머,마리 선생님."
"리코 양,잠깐 자리 비운 사이 별일 없었죠?"
"네,의사가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졌지만,다행히 큰일은 없었네요."
"나도 사정 있었다구요."
"네네,그러시겠죠."
"정말…화 풀어요."
"오하라 선생님은 그분을 좋아하시는 거죠?"
"What? 무슨 말 하는지 잘 모르겠눼요."
"제가 이 병원에서 선생님과 함께한 세월만 몇 년인데 선생님이 대하는 태도에서 바로 보여요."
"내가 그렇게 티 났나…."
"선생님은 오늘내일하는 환자 앞에서도 서슴없이 독설하시는 분인데 그분한테만큼은 꼼짝 못 하시잖아요."
"하핫.너무 잘 알아서 숨기지도 못하겠는걸."
"하지만 그분은…."
"포기하지 않아.절대로."
"정말 좋아하시네요."
"나도 나란 사람이 이럴 줄 몰랐어."
"다이아 양,들어갈게요."
"루비랑 무슨 얘기 하셨나요?"
"별 얘긴 아니에요."
"수상한걸요."
"노코멘트입뉘다."
"그 얘긴 됐고,선생님."
"Why?"
"퇴원하겠어요."
"What?"
"더는 차도도 보이지 않고 이대로 계속 입원하고 있는 건 집안에 부담만 될 뿐이에요."
"의사로서 다 낫지도 않은 환자를 내보낼 순 없어!"
"계속 입원한다고 달라질 건 없어요."
"부탁이야.아직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나을 가망 없는 제가 계속 자리만 차지하고 있으면 저 때문에 나을 수 있는 사람도 못 돌봐요."
"수술하자! 수술하면 분명 나아!"
"상관없어요."
"상관없다니! 자기 목숨이잖아! 왜 소중히 하지 않는 건데!"
"전 몹쓸 언니니까요."
"무슨 말이야 그게."
"전 루비 인생을 망친 것도 모자라 꿈까지 빼앗은 구제 불능 언니라구요!"
그래,나는….
"어머,역시 쿠로사와 가 장녀는 뭐든 척척 해내네요."
"반면에 차녀는…."
어렸을 때 집안 후계자수업을 위해 모든 걸 완벽히 해내야 했던 나와 루비는 항상 비교 대상이었다.
자연스럽게 루비는 항상 위축됐고,자기 의견도 잘 드러내지 못하게 됐다.
그런데도 난 후계자수업이 바쁘단 핑계와 난 이렇게 힘든데 그 아이는 자유롭단 유치한 질투로 오히려 그 아이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언니,오늘 학교에서…."
"오늘은 피곤하니 다음에 얘기하죠."
"응…."
그렇게 난 위로는커녕 오히려 그 애를 더 고립시켜 버리는 최악인 인간이었다.
인과응보였을까.
"콜록콜록! 커헉!"
"언니! 피가!"
진단결과는 아직 제대로 밝혀진 게 없는 난치병.발생자도 극소수라 사실상 치료방법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내가 사실상 집안을 잇는 게 불가능하게 되자 그 역할은 자연스레 루비에게 떠넘겨졌다.
"루비,미안해요미안해요…."
"응,괜찮아.언니가 아픈데 내가 투정 부릴 수 없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난 알고 있었다.루비는 평생 꿈이던 아이돌이 될 기회를 나 때문에 바로 눈앞에서 놓쳤다는걸.
"저는 최악인 언니예요….그 아이가 괴로울 때 힘이 돼주진 못 할망정 그 애 평생 꿈마저 앗아간…."
"살 가치 같은 거 없어요!"
"그런 말 하지 마!"
"마리…?"
"당신이 죽었을 때 남겨진 사람들 마음이 어떨진 생각 안 해?"
"일단 살아! 죄책감은 살면서 갚으면 되는 거잖아!"
"루비는 말야,당신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겠다고 했어! 그런데 당신이 삶을 포기하면 어쩌자는 거야!"
"루비가…."
"루비만이 아니야…."
하지만 결국 마음을 전하진 못했다.역시 난 겁쟁이구나.
그리고 네가 떠나는 그 날이 왔다.
"마리,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반드시 살아 돌아와."
"네,이제 도망치지 않아요."
"그럼 가볼게요."
"저…저기 다이아!"
"예?"
돌아본 너에게 인파를 뚫고 내 고백이 닿았는진 모르겠다.
네가 무사히 돌아올 때 다시 한번 하리라.
아무도 안 궁금한 뒷이야기
P.S.1.의사 마리와 환자 다이아란 설정은 이 만화(23∼28페이지)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P.S.2.결말은 수술 성공하고 돌아온 다이아한테 고백하는 장면으로 할까도 했는데 여운이 좋아서 저렇게 했습니다.
P.S.3.리코는 마리 좋아한단 설정인데 원래 마리한테 마음 전하는 장면도 넣을 생각이었는데 쓰다 보니 빠져서 본문만 봐서는 잘 안 드러나게 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