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너의 처음이었다.첫인상은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큰 애구나 정도였다.그러다 계속 만나며 느낀 건 다이빙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 있던 나한테 너는 유일하게 나를 깔볼 수 있는 실력자였다.그런 너를 이기고 싶어 평소 2배는 더 열심히 했지만 따라가긴 역부족이었다.
"카난,치카랑 같이 유치원 다니면 안 돼? 왜 카난 혼자 먼저 졸업하는 거야?"
"나도 그러고 싶지만,생일이 빨라서 어쩔 수 없어."
"우엥,치사해! 치카도 카난이랑 같이 학교 입학하고 싶단 말이야!"
"앞으로도 계속 같이 놀 테니 이해해줘.허그할래?"
"훌쩍.나 말곤 허그하면 안 된다?"
"요우도 허그하자."
"내 말 안 들었지!"
너의 유치원 졸업식 때 어렴풋이 나랑 겨우 2개월 차이인데 이렇게 갈리는 게 억울했다.아직 따라잡지 못했는데 너 먼저 앞으로 나아가다니 분했다.치카랑 함께 중학교는 꼭 너와 같이 들어가겠다고 다짐했지만 당연히 이루지 못했다.그렇게 닿고 싶어도 닿지 못하던 나날이 계속되는 와중에 눈치챘다.나는 너를 좋아한다.
당연히 이 마음을 드러내진 않았다.이 마음을 전하는 순간 우리 셋의 관계는 깨질 것이 분명하니까.나만 입 다물고 있으면 우리 셋은 평생 함께할 것이다.나는 믿고 있었다.그러나 너는 아니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카난.나만 부르고."
"요우만 들어줬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어."
"나,치카를 좋아해."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에선 구토감이 올라오고 머리는 깨질 듯 아프고 귀는 먹먹해 잘 들리지도 않았다.그래,너의 처음은 내가 아니구나.치카가 아니라 나부터 만났다면 내가 너의 처음이 될 수 있었을까.
"치카는 예전부터 카난이랑 함께 다녔잖아.분명 잘 될 거야."
이미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 형체를 알 수 없는 상태지만 너에게만은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기에 애써 태연한 척한다.
"고마워,요우.네 덕분에 용기를 얻었어."
그렇게 환한 미소 짓는 너를 보니 더욱 괴롭다.결코,내가 가질 수 없는 걸 알기에.
다음날 너를 보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결석할까도 했지만 네가 걱정하고 찾아와줄 걸 알기에 어쩔 수 없이 등교했다.
학교수업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수영부도 몸이 안 좋단 핑계로 쉬었다.
"요우,잠깐 얘기 좀 해."
"왜 그래?"
"그건 이쪽이 할 말이야.무슨 일 있지?"
"그냥 몸이 좀 안 좋을 뿐이야."
"거짓말하지 마.다 보이니까."
리코의 그 말을 듣는 순간 간신히 잡고 있던 슬픔의 고삐가 완전히 풀려 주체할 수 없게 됐다.
나한테 이런 친구가 있음을 감사히 여기며 모든 걸 털어놓았다.
"고백해."
"아니,내가 고백하면 우리 관계는 끝이야."
"하지만 이대로 담고만 있으면 요우는 무너져버릴 거야."
"괜찮아,카난만 행복하다면."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무너져버리는 꼴 못 봐."
"지금 뭐라고?"
"난 널 사랑한다고."
"그대로 그 마음을 담고만 있으면 넌 분명 안에서부터 무너져버려서 돌이킬 수 없게 될 거야."
"일단 부딪혀.그 다음이 어찌 되건 지금 네 감정에 충실해."
"알았어."
고마워,리코.네 마음에는 답해주지 못하지만 이 은혜는 평생 안 잊을게.
그렇게 난 너를 찾아나섰다.얼마 지나지 않아 네 표정을 보고 난 네 고백이 실패했단 직감이 왔다.